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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주 너도 봤잖아? 힐량이 보조 힐러 급인데 힐이 즉시 되니까 전투에 투입할 수 있다고 파라곤 네임드 공격대장이 스카우트 제의 하는 거. 힐러라는 게 그런 존재라고.”
“그렇긴 하지만…….”
“레이드에 참가할 수 있는 힐러는 어디든 대우 받잖아? 그런데 내가 아쉬울 게 뭐 있어? 오히려 너랑 나랑 같이 다니면 서로 의지도 되고 도움도 될 거 아니야?”
“하지만 네가 너무 손해잖아.”
“돈 조금 덜 버는 건 상관없어. 잘 나가는 딜러도 돈 엄청나게 잘 버는 거, 너도 알잖아?”
“그래도 힐러만큼은 아니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난 그럴 마음 없어.”
유지웅은 정효주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지난 석 달 동안 나 레이드에 꽂아주려고 네가 이리저리 힘쓴 거 다 알아.”
“아, 아니야. 그냥 말 몇 번 꺼내봤을 뿐이야.”
“이제는 내가 널 도울게.”
정효주의 얼굴이 빨개졌다. 은근히 달아오른 분위기. 남녀가 서로의 무장을 해체하고 하나로 합쳐지기 전의 들뜬 열기. 그녀의 얼굴에 기대감이 떠올랐다.
“우린 친구잖아?”
그녀의 안색이 구겨졌다. 그녀의 이성친구는 아직 어렸다.
“정말 미안합니다.”
김혁수가 정효주에게 사과했다. 힐러들이 여러 모로 압박을 넣고 있어서 버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유지웅 때문에 공격대가 전멸할 뻔했고, 힐러들은 그 분노를 풀지 않았다. 그 분노는 자연스럽게 유지웅을 데려온 정효주에게까지 이어졌다.
“아니에요. 저야말로 그동안 감사했어요.”

“나중에 자리가 나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이걸로 인연 끊어졌다 여기지 마시고 자주 연락하세요. 저도 연락 자주 드릴 테니까요.”
정효주는 일 년 넘게 몸을 담았던 김혁수 막공에서 강제로 탈퇴당했다. 하지만 표정은 밝았다.
“아, 후련하다.”
“미안해. 나 때문에.”
“아니야. 나도 여러 가지로 스트레스 많이 받았어. 탱커도 딜러도 아닌 것이 부탱 자리에 있으면서 자기들 돈 긁어먹는다고 딜러들 눈칫밥이 장난 아니었거든.”
힐러, 탱커, 딜러는 그들만의 세상이 있다. 힐러는 자기들만의 그룹에서 우월성을 과시하고 즐긴다. 탱커는 본인만 열심히 노력하면 자기 공격대를 창설할 수도 있다.(힐러들은 공격대장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매우 자유로운 영혼이기에 다른 ‘잡무’를 하는 것을 귀찮게 여긴다.) 딜러는 찬밥 신세지만, 그들만의 설움을 교류함으로써 공감대를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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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하지 않은 컨디션 속에서 욕심을 내어 무리한 질주, 태클을 회피하지 못해 그대로 역습 허용-
네임드 데뷔 후 최악의 경기 내용이었다.
벌써부터 성급한 몇몇 팬들은 유안을 향해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만약 패배라도 할라치면, 저 성질머리 고약한 이들은 물병이든 무엇이든 마구 던져댈 것이 틀림없었다.
절대 지고 싶지 않다.
그것도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지도 못하고, 자신의 오만한 실수로 인해 패배하는 것은 더더욱 싫다.
그러나 패배하지 않기 위해서는, 아니.
승리하기 위해서는.
여태까지 하던 방식 그대로 해서는 결코 이길 수 없다.
‘이래서는 변명 밖에 안 되잖아···!’
유안은 저도 모르게 이 악물었다.
남은 시간은 대략 10분.
‘고작 이런 곳에서 패배를 하려고 환생까지 했나?’
그럴 리가.
악문 이 사이에서 진한 핏물의 텁텁함이 느껴진다.
‘자기 자신의 축구를 하라고 내가 말했으면서, 정작 내가···.’
건방짐은 알아도 비굴함은 모른다.
오만할 순 있어도 비겁하진 않다.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 해. 무엇이든 사용해야 해. 설령 비굴해 보일지라도, 이기는 게 장땡이야. 그리고 팀원들을 믿는다는 것은···. 도저히 믿으려야 믿을 수 없지만, 그래도 팀원들의 쌀 한 톨 만한 실력을 믿는다면···!’
해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로치데일 전에서 그가 보였던 환상적인 팀플레이는 환상처럼 불가능 해 보였어도 분명 실존하는 것이었다.
너무나 복통이 심해 뭐를 어떻게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지만, 바로 그와 같은 경지가 필요했다.
모든 것을 잊고, 이를 테면 유안 카를로스라는 자신의 과거마저 잊고!
‘유안 카를로스의 축구는 유안 카를로스의 것, 나는 김유안이야.’
별 것 아닌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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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은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
유안의 몸 상태가 썩 좋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그래도 팀원들과 좋은 호흡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오늘의 네임드 유안은 지난번에 비하면 그리 협조적이지 못했다.
오히려 몇 번 무리한 대시로 인해 상대에게 역습 기회를 내줘, 전반전이 끝나가는 지금 1:0으로 뒤지고 있는 상태.
‘확실히 정상은 아니야. 유안도 그건 알고 있다.’
처음 몇 번 단독 돌파를 시도했던 유안은, 스스로 자신의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파악했는지, 이후 적극적으로 팀원들을 이용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리그전 때 보여주었던 날카로운 판단력과 하모니 대신, 마치 생기 없는 벽을 다루는 듯한 플레이가 지속 되었다. 말 그대로 팀원들을 ‘이용’하려는 것이지, 함께 움직이려는 듯한 모습이 아니었던 것이다.
‘뭐가 문제인거지? 그렇게나 환상적인 팀플레이를 할 수 있었는데, 왜 이번에는 팀원들과 동떨어진 움직임을 보이는 거야?’
벅으로선 이해하고 싶어도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사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유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젠장, 할 수 있을 거 같았는데···.’
몸이 애매하게 회복된 것이 오히려 독이었다.

차라리 배가 뒤틀리듯 아프고, 뒷문이 쓰라려 달리는 것도 시원찮았다면 아예 단독 움직임을 포기하고, 모든 천재성이 팀플레이를 위해 발휘될 텐데, 그럭저럭 움직일 만 하다는 게 문제였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움직일 만 하다는 것이지, 결코 정상은 아니었다. 막상 중요한 순간이 되면, 마치 몸살 직전처럼 몸이 무거워 조금씩 굼뜬 반응이 나오는데, 어떻게 제대로 된 플레이가 가능할까?
‘1:0이라.’
유안의 등으로 작게 식은땀이 흘렀다.
설령 몸 상태가 좋았다 해도, 레딩 FC의 수비력은 마냥 우습게 볼만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여기서 지면 그건 정말 내 탓이야.’